
승협의 주말은 아침이 다 지나갈 무렵인 10시에 시작한다. 이제는 익숙한 감각이 없어진 왼쪽 팔에는 기분 좋은 무게가 느껴진다. 깰까 봐 조심스레 내려놓은 머리가 동글동글해 잠시 고민하다 조심한 보람도 없이 이마에 입 맞추면 재현이 퉁퉁 부어서 마카롱 같은 눈을 뜨는 걸로 둘의 하루는 시작한다.
주중에는 출근이 빠른 재현이 먼저 일어나 나가버리기 때문에 오래 자서 붓는 얼굴을 볼 수 있는 건 주말뿐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잘 깨우지 않지만 어차피 꼭 가보기로 한 집 앞 카페의 브런치 세트는 12시에 주문이 끝나기 때문에 다시 자려는 재현의 볼을 씻고 나온 승협이 차가운 손으로 문질렀다.
"아아.. 싫어어..."
"지난번에 못 먹어서 억울하다며, 마 일어나자."
침대로 또 늘어지는 몸을 안아서 일으키면 불만에 툭 튀어나온 입을 하고도 순순히 목에 팔을 감는다. 어지간히 짜증이 났는지 목에 두른 팔에 힘을 줘 몸에 매달린 재현이 떨어지지 않는 것도 익숙했다. 엉덩이를 받치고 화장실에 데려가 세면대 옆 카운터에 앉히고 나서야 재현도 매번 못 먹은 브런치 생각이 나 이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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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고 나온 재현이 옷을 뒤적이자 기다리면서 치던 기타를 내려놓은 승협이 옷장 앞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고심하는 애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왜?"
"니트 저거 아이보리색 입을지 지난번에 산 남방 입을지 고민 중.."
"저거 니트 입으니까 예쁘더만."
"그럼 저거 입을까? 형 셔츠니까 이건 겹치기는 해."
쇄골이 살짝 드러나는 얇은 니트를 꺼내든 재현이 허리에 감긴 손을 풀어냈다. 떨어진 손이 잠시 허공에 떠있다 아예 허리를 잡고 마주 보게 돌려 능글맞게 말했다.
"나는 커플룩 좋은데."
"커플룩은.. 그리고 내가 저거 입으면 우리 너무 블랙 앤 화이트야. 바둑판도 아니고 그건 싫어."
"그건 그렇네."
옷 벗은 모습이야 매일 같이 보는 거지만 그래도 무방비한 모습의 애인을 보는 건 늘 즐거운 일이라 말하는 승협에게 길들여졌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훌렁훌렁 벗고 입는 재현을 보며 다시 승협은 기타를 만지작거린다.
"나 그거, 그거 쳐줘."
니트에서 머리만 내민 채로 말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라 팔이 없어 보이는 애인을 보고 웃는다. 승협은 손으로는 익숙한 코드를 잡고 눈은 어딘가에 벗어둔 팔찌를 찾아 작은 아파트를 헤매는 재현의 등을 바라본다.
"이거 괜찮지?"
"어."
"형 그거 말고 이거 신어. 이따가 영화 보고 벚꽃 아직 남았던데 어디든 산책하자."
"그럴까?"
커플룩은 싫은 기색이더니 결국 꺼내든 신발은 같이 산 운동화라 커플룩인 것 같아 승협이 피식피식 새는 웃음을 잘 못 참자 눈을 위로 굴리며 재현이 현관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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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짱, 어쩌지. 연어 베이글도 괜찮을 것 같고 저거 브랙퍼스트 소세지 세트도 맛있어 보인다."
"나는 소세지."
"그럼 나 연어 할까? 반반?"
"근데 너 저거 브런치 스페셜 먹으러 온 거 아니었어?"
"아.. 근데 이거 연어랑 소세지 너무 맛있어 보여."
볕 좋은 테라스 석에 앉아 심각하게 메뉴를 고민하느라 불룩 튀어나온 볼을 쿡쿡 찌르며 묻자 울상이 되는 얼굴에 승협은 몇 년이 지나도 면역이 없다.
"아침 안 먹었으니까 세 개 다 시켜보자."
"그럴까?"
"주문하고 올게. 아메리카노?"
"응."
둘의 생각보다 사람 없는 카페에서 승협이 주문하는 목소리가 울린다.
“아메리카노 두 잔이랑 브런치 스페셜, 연어 베이글, 소세지 세트 하나요.”
“이거 소세지 단품으로 하실 수 있어요. 브런치 세트랑 나머지 구성은 똑같아요.”
“어.. 재현아!”
지켜보던 재현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주문을 끝낸 승협이 돌아오자 말없이 의자 사이의 간격을 좁혀 어깨에 머리를 기대온다.
“언제 나오려나?”
“십 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빨리 나오면 좋겠다..”
“저번에 말한 그 손님 있잖아.”
“누구?”
“그 퀸 좋아하신다던 그 분.”
“아 그 사람? 왜?”
“내가 브로마이드 몇 장 빼뒀다가 챙겨드렸던 거 고마워서 지난번에 지나가다 화분 두 개 주고 가셨어. 거기 초등학교 쪽 사거리에 새로 생긴 그 꽃집 사장님이래.”
“대박 무슨 꽃이야?”
“별꽃이랑 이름 생각 안 나는데, 이쁜 거 한 개. 내일 보고 하나 가져가.”
음식이 나와 떨어져 앉으면 승협이 못내 아쉬운 눈빛으로 쳐다봐도 이미 브런치 세트에 정신이 팔린 재현은 수란을 어느 각도로 자를지를 고민하고 있다. 밖에서도 자연스럽게 하는 소소한 스킨십은 몇 년이 지나도 승협은 서투르기만 한 부분이라 재현이 기대오고 안겨 오는 것이 짧게 끝나면 매번 아쉽다.
“안 먹어?”
“어 먹자.”
“응? 손 왜..”
“어? 이거 맛있나?”
그래도 아쉬운 순간에 순간적으로 손을 슬쩍 잡았다 놓는 것 정도는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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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진짜 SUV 잘 산 거 같아.”
“왜?”
“그냥. 이렇게 달리면 하늘이 좀 더 가까워 보여서.”
“나중에 산에 살까 그럼?”
“산? 형 벌레 싫어하잖아.”
“퇴치기 설치하지 뭐.”
“한 백 개는 사야겠다.”
“그래야겠다.”
“나 손 잠시만.”
기어가 수동인 차종이라 늘 손을 쥐어다가 겹쳐 잡는 버릇이 있는 승협 때문에 중간중간 손을 빼도 어느새 다시 잡혀 있다. 폰으로 카톡을 보내고 다시 넣자마자 곁눈질로 보더니 다시 잡아가는 승협을 보며 그냥 재현은 웃어버린다.
“맞다. 나 저번 달에 발주 넣은 원석 아직도 도착 안 하더라.”
“그거 아직 안 왔어?”
“아 거기 배송 다신 안 쓸 거야. 너무 싸더라니 지금 공항에만 몇 주째야 이게..”
짜증이 나 툴툴대면서도 손은 얌전히 잡혀있는 것이 귀여워서 신호에 잡히면 끌어다가 입 맞추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가 너무 가까워진다.
“다 와간다. 매점에서 팝콘 살 거야?”
“음.. 우리 이거 보고 저녁 먹을 거니까 그냥 커피만 마실래.”
“그래.”
차창을 내리고 결제를 하고 가림막을 받고, 승협이 가림막을 붙이고 있으면 재현은 커피를 사 온다. 영화 볼 준비를 마치고 차에 들어가면 바깥의 불빛만 남는다.
“자주오니 무슨 기계 같이 분담하네 일을.”
“그렇네. 우리 여기도 많이 왔다.”
“나 손에 땀 찬다 잠시만.”
어둠 속에서 손을 빼고 물티슈에 닦는 재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일을 열었다.
“나는 땀 많은 거 좋은데..”
“아 진짜.. 조용히 해.”
“왜 사람도 없는데, 이러려고 여기 오는 건데.”
다시 가져간 손가락마다 입 맞추며 하는 말이 은근하게 노골적이라 얼굴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 된 재현이 다른 손으로 입을 쭉 밀어내며 말렸다.
“이따 영화 시작하면. 지금은 밖에 사람들 다니잖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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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어디 공원 갈까?”
“응? 차 두고 집 앞에 가자.”
“그래도 나온 김에 많이 핀 데 가야지.”
“인스타 한번 볼까?”
“어. 그 훈이도 뭐 올렸던데?”
“거기 좀 돌아가는데 괜찮아?”
“운전?”
“응. 오늘 아까 드라이브도 했으니까..”
“뭐 이정도야. 우리 옛날에는 주말이라고 무작정 차 타고 강원도도 가고 그랬는데.”
“작년이 옛날이야?”
재현이 바로 지난여름의 일을 먼 옛날처럼 말하는 애인이 조금 웃겨 웃음기가 가득한 말로 놀리자 머쓱한지 승협이 슬쩍 곁눈질로 조수석을 보았다.
“아니 뭐..”
“어디 가고 싶어?”
“가끔?”
“봄도 꽃 지니까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우리 여름에 여행갈까? 좀 오래.”
대답하지 않고 있다 잠깐 신호에 걸리자 돌아본 재현이 먼 앞을 내다보고 있자 승협이 여전히 겹친 손을 끌어다 손등에 입술을 대며 말했다.
“좋지. 미리 공지도 하고 해야겠네. 가고 싶은데 있어?”
“아직은? 그냥 같이 어디 가보고 싶어. 너무 오래는 말고 그냥?”
“그냥이 제일 좋지.”
“프사 보니까 애들 몇 명은 결혼한다더라”
“그래?”
“응. 안 친해서 축하한다고 말은 안 했는데 신기하더라구.”
“너도 하고 싶어?”
승협의 뜸 들인 질문과 힘이 들어가는 손에서 감정이 느껴지는 듯해 재현은 조금 서글퍼졌다.
“아니. 그런건 아니고.”
“어.”
어쩌면 그 청첩장은 재현을 제외한 모든 동기들이 받았을 수 있다는 생각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승협의 마음 속 깊이 한 구석에 남아있는 죄책감을 건드렸다. 비단 재현의 일만이 아니라 자신의 일도 그랬다. 부모님을 자주 보지 못하는 점이라던가 학창시절 친구가 연락을 끊는 일이라던가 이런 일은 잊혀질만하면 또 다시 새로운 형태로 승협을 흔들었다.
차 안의 공기가 가라앉은 느낌에 재현은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가도 다시 닫는 걸 반복하다 한숨을 폭 내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승짱, 있지 나는 지금이 좋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그래?”
“응. 그러니까 어차피 안 되는 거 쓸데없는 생각하지마. 그냥 신기해서 얘기 꺼낸 거야. 내 친구들 중에 결혼한 애들은 사고 친 애들밖에 없어서 그랬어.”
“알았어.”
여전히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재현은 굳이 손을 빼지는 않았다. 서로에게 더 안심이 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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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길 잘했네.”
“와아 진짜 많이 폈다.”
거의 지지 않은 벚꽃을 보며 재현이 진심으로 감탄하자 승협이 트렁크에 뒀던 카메라를 꺼내왔다.
“사진 찍게?”
“어.”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자 재현이 슬쩍 카메라를 만지는 승협의 손을 당겨와 잡았다
“승짱, 우리 오늘 손 많이 잡는다, 그렇지?”
“누가 들으면 내가 잡은 줄 알겠네.”
“형이 잡은 거 아니었어?”
“응. 내가 잡았지.”
수긍하는 승협의 말에 웃음이 터진 둘이 한참 웃다 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형 진짜 옛날에는 이런 거 잘 못 받았는데.”
처음 만났던 20살 때의, 그러니 승협이 22살 시절의 재현에게 승협은 조금 어려울 때도 있었다. 서로 어렸고 흔들리던 시절이라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승협은 늘 그만의 단단함이 있었고 그런 그가 그때도 지금도 가끔 헤매는 재현을 잡아주었다. 재현이 성인이 되고 힘들었던 때는 늘 그가 옆에 있었다.
“어떤 거?”
“안 능글맞았어.”
“그래?”
“어느 순간 순해졌어.”
“너 닮아가나 보다.”
“그런가부다.”
잡은 손을 앞뒤로 흔드는 재현에 맞춰 승협은 팔에서 힘을 뺏다. 날 서 있던 20대 초반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정말 재현을 닮아갔다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동방에서 본 동글동글한 젖살 덜 빠진 새내기와 조금 더 각이 생긴 얼굴의 지금의 재현은 놀랄 정도로 바뀐 것이 별로 없었다. 스타일이야 조금 차분해졌다지만 여전히 덜렁거릴 때도 많고 그러다가도 훌쩍 어른스러워서 늘 자신을 잡아주는 것까지 여전했다.
밤이라 쌀쌀한 온도에 바람이 불고 꽃잎이 눈처럼 내렸다.
“꽃눈이네.”
“진짜 눈 같다.”
“재현아, 저기 서봐.”
“저기?”
가리킨 나무 밑으로 달려가는 재현의 뒷모습에 승협은 갑자기 가슴이 울컥하는 것이 느껴졌다. 눈처럼 내리는 꽃잎 밑에 선 재현은 몇 번을 봐도 가슴 뛰는 광경이었다.
“재현아.”
"응?”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그제야 카메라를 들어 한 컷을 찍은 승협은 뷰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재현을 담았다.
승협이 카메라를 내리자 다시 달려온 재현이 사진을 확인하지 않고 자신만 보는 승협을 의아하게 보다 조금 촉촉해진 눈을 눈치채고 웃었다. 늘 그렇듯 웃을 때 가장 예쁘게 주름지는 눈을 보며 승협이 웃자 재현이 조금 위에 있는 승협의 얼굴을 붙잡아 이번에는 입을 맞췄다. 고여 있던 눈물이 눈을 감자 흐르는 게 느껴져 승협은 슬쩍 훔쳐내고 재현을 품에 가득 안았다.
승협이 뒷목에 올린 손이 떨리는 게 느껴진 재현은 자신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입술이 살짝 떼진 사이 자신의 입술에 붙은 꽃잎이 아니었다면 아마 울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승협이 떼 준 꽃잎을 보며 웃던 재현이 여전히 붉어진 눈시울로 자신을 보며 웃는 승협을 보며 말했다.
“벚꽃잎을 잡으면 행복해진다던데 여기서 더 행복해지려나?”
잡은 꽃잎을 바라보며 자신의 품 안에 안겨서 말하는 재현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다시 한번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해.”
“더 행복해질 수 있네. 나도 사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