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ekend, 장마가 끝나면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앞의 것을 안 보셨더라도 상관은 없습니다.
Way
-파혼하니까 마음이 편해?
-말을 그렇게 하냐..
뾰족하게 찔러오는 훈의 말에 조금 더 움츠러든 재현이 소심하게 대답하자 훈도 마음에 안 든다는 입술은 그대로지만 눈빛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집은? 방 구했어?
-아, 일단 가게 옆에 방 그거 치우고 거기 매트리스 뒀어
-야 거기가 사람 살 공간이냐.. 난방은 어떡하고
-가게 문 열어두고 전기장판 까니까 잘만 하던데?
태평하게 대답하는 재현의 말과는 달리 다시금 찬찬히 훑어본 훈의 눈에는 얇아진 손가락이 보였다. 안 그래도 이혼하기 직전에도 말랐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보다도 더 마른 것 같아 괜히 밥이 나오기도 전에 뭐라고 했나 싶었다.
-형이 집 비워준다고 했다면서.
-에이 그걸 내가 어떻게 받아.
-그거야 그래도 너 가게에서 자는 것보다는 낫지.
-아니야, 마음 편한게 낫지..
더는 얘기하기가 싫은지 주문한 칼국수에 있는 바지락를 열심히 까먹는 재현을 보며 훈도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간간히 얘기를 하며 먹고 일어나자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 바로 헤어지고나서 재현은 혼자 지하철로 걸어갔다.
서두를 필요가 없어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생각을 하게되는 것이었다. 이럴 때면 운전을 못 하는건 아니지만 오랫동안 하지 않아 굳이 헤어지고도 차를 사지 않은걸 가끔 재현은 후회했다. 그리고 꼭 저런 류의 생각들은 처음 하나가 떠오르면 다음 것을 달고 오는지 후회가 가득한 걸음을 옮기면서도 고집스레 천천히 걸었다.
-----
결국 지하철역에 도착해 급하게 화장실을 찾은 재현은 구석에 있는 칸에 들어가 저녁으로 먹은 것을 모두 게워냈다. 투명한 물위로 허여멀건한 토사물이 쏟아져 지저분해진 걸 멍하니 보다 물을 내렸다. 자극적인 음식은 아니었지만 근래 소화하는 것보다 토해내는게 더 많았던 터라 위장이 다시 배배 꼬이는 느낌이었다. 시트를 닦고 위장을 부여잡은 채로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을 견뎌낼 용기가 나지않아 다시 도로로 올라온 재현이 앞에 있던 택시에 올랐다.
-----
‘너 살 많이 빠졌더라. 밥은 챙겨 먹고 다음에 또 시간되면 보자.’
가게로 돌아오자마자 매트리스 위에 무너지듯 쓰러져 잠들었던 재현이 아침에 일어나 확인한 폰에는 훈의 들어갔냐는 문자와 쓸데없는 광고성 정보들 몇 개만이 화면에 떠있었다. 훈에게는 어젯밤에 잠들어서 이제야 봤다는 식으로 보내고 나서 다시 천장을 보고 눕자 또 스멀스멀 올라오는 생각들에 이미 전날부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 지쳐버린 마음은 더 이상은 그것들과 피하지 못했다.
-----
-형 괜찮아?
-응..
말은 그랬지만 누가 봐도 승협은 괜찮지 않았다. 쓰러지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부쩍 멍해지는 일이 잦아진 그를 재현은 최대한 옆에서 지지해주려고 했다. 살아계실 때 잘해드렸어야 한다는 생각을 부모님을 보낸 자식 누구든 안 하겠냐마는 승협의 경우에는 스무 살 때부터 거의 절연한 듯이 살아온 터라 더더욱 그랬다.
승협이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 친구들끼리 술을 진탕 마신 날이었다. 재수하는 친구들, 주변 대학에 붙은 친구들 사이에서 이제 멀리 떠나는 승협은 당연히 타겟이 되었다. 분위기 상 주는 술을 거절하지 못하고 다 받아 마시다 잔뜩 취한 그를 같이 있던 친구가 데려다 주기로한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야야 똑바로 걸어봐라 좀.
-야아.. 니느은 내 안 보고 싶겠나…
-뭐 좀 그렇기야 하겠지만은 그래도 어쩌겠냐
-그렇지? 니도 내 보고 싶을 것 같지?
3년 내내 같은 반을 한 친구였다. 딱 그 나이의 우정과 사랑 사이의 어드메의 감정에서 아슬하게 줄타기하던 나날이었고 둘 다 그걸 꺼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문제는 당연하게도 취할 때까지 마신 술이었다. 어두운 골목에서 취한 승협을 잠시 벽에 기대게하고 한숨을 돌리던 찰나 취한 사람이 손을 끌어당겼고 그래도 입이 부딪혔다.
-야! 존나 아프잖아!
-아 미안미안.
품에 안긴 채로 한참을 웃던 걔가 닷 승협의 옷깃을 잡아내려 입 맞췄을 때 행복했고 바로 다음 옆에서 들리는 고함소리에 첫사랑의 기억은 그렇게 끝이 났었다.
-----
그 뒤로 외동임에도 승협은 거의 가족, 친척들과는 연락을 끊고 살았고 그게 아버지 일 이후로는 큰 마음의 부채가 되었다는 것을 재현도 당연히 알고 있었고 정말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주말에 훌쩍 대구로 내려가 어머니를 뵙고 오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솔직히 그게 더 좋았다. 자신이 아는 승협은 그런 사람이었고 그가, 또 그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을 약속하고 같이 반지를 보러가기로 한 다음의 일이라 조금이라도 승협에게 시간이 생기면 같이 반지를 만들자고 하고 몇 달을 기다렸다. 분명 결혼은 승협이 하자고 한 일이었는데 갈수록 초조해지는게 자신이라고 느꼈을 때 재현은 조금 두려워졌고 그 두려움은 점점 커져 더 이상 결혼 얘기도 꺼내지 않게 되었을 때 승협도 무언가 잘못 되어간다는 걸 느꼈다.
같이 보낸 주말이 언제인지, 왜 둘 사이의 대화가 이렇게나 줄어들었는지 눈치챘을 때는 처음 만났을 때도 보지 못했던 낯가리는 재현이 남아있었다. 같이 산지가 십년이 다되어가는 시점에서 낯을 가린다니 말도 안되는 생각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정말이었다. 자기 앞에서 눈치를 보고 최대한 같이 있는 시간을 벗어나려는 재현을 보며 부랴부랴 이 상황을 고쳐보고자 했다.
-재현아, 우리 주말에 데이트 갈까?
-대구 안 가?
-어? 요번에는 안 가지 뭐.
억지로 목소리를 끌어올려 밝게 얘기하는 승협의 노력이 무색하게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그를 보는 재현의 눈빛에 옛날의 그 사랑만이 가득한거랑은 달랐다. 약간의 불신까지 읽었을 때 승협은 자신의 눈빛에는 어떤 감정이 비치길래 재현이 저런 눈으로 자신을 보는걸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다가오는 주말까지 같이 사는 집이지만 최대한 서로를 피해다녔다.
-----
결국 데이트는 가지 못했다.
-형 이건 아닌 것 같아.
-뭐가?
나란히 누워있다 등을 돌리며 하는 재현의 말에 대답하는 템포가 어그러져 있었다. 더 이상 편안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둘의 집에서 결국 재현은 떠났다.
-----
똑똑-
닫힌 문을 누가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난 재현이 급하게 핸드폰을 찾자 스크린에는 ’11:29 AM MON’이라고 쓰여있었다. 공방을 연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지각을 했다는 생각에 씻을 생각도 못하고 급하게 문부터 열러 뛰어나갔다.
밖에서 초조하게 문을 보며 흘림 땀을 닦아내는 승협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었다.
-재현아!
멍하니 대답 없는 재현을 보고도 안심했는지 숨을 몰아쉬는 승협을 보고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내리누르며 재현은 결국 문을 열어주었다.
-형.
-아니, 허, 문이 안 열려있길래.
-일단 들어와.
공방 탁자에 앉혀두고 대충이라도 세안을 하러 들어간 화장실에서 재현은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이 너무 속상했다. 몇 달을 안 보고 살았는데 한번 이렇게 나타나는 걸로 다시 기뻐지는게 너무 자신이 가벼운 것 같고 다시 와서 흔드는 승협이 밉고 반갑고함 기분이 마음 속에 뒤섞여있었다.
-----
자주 오던 공방에 바뀐 것도 거의 없지만 괜히 오랜만이라 조금 낯설어 주변을 둘러보던 승협이 재현이 나와 티백을 우려 차를 내오는 동안은 가만히 탁자만 내려다 보았다. 할말이 없다기 보다 헤어짐의 원인을 재현이나 주변인들은 재현에게 돌렸지만 승협은 알았다. 말라가는걸 외면한 것도, 자기만을 생각해 상처를 준 것도, 그걸 돌아보지 않은 것까지 전부 자기 잘못이라는 것을.
그래서 더더욱 잡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보냈고 잡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헤어지고 나서 겉으로는 잘 살았어도 재현이 짐을 뺄 때부터 승협은 제대로 자 본 기억이 없었다. 근데 앞에 앉은 재현의 얼굴이 더 상한 것 같아 머그를 더 꾹 쥐기만 할 뿐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형.
-어어.
-나 그냥 피곤해서 늦잠 잔거야.
-아 그래?
-어 이거 마시고 가. 추운데 왜 뛰어왔어.
다시 작업대로 가려는 재현을 붙잡은 건 승협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일단 뒤도는 등을 다시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잡힌 손목에 놀란 재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걸 보자 처음 둘이 만났을 때가 생각이 났고 승협은 처음으로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울었다.
십년 가까이 보는 동안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승협의 우는 모습에 당황한 재현이 달래기 위해 팔을 뻗자 그대로 안긴 승협이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 진짜 이게 다 내 잘못이라서 말을 못했어, 재현아..
-아니야.
-진짜 내 잘못이야. 근데 내가 그런거라 너한테는 또 짐이 되고 그럴까봐 돌아오라고 와서 빌고 싶었는데 그러면 너가 싫어할까봐..
어느 순간 안는게 아닌 안긴 것처럼 된 재현은 되는대로 말하는 승협의 말을 들으면서 조금은 안심했다. 내가 형 생각을 하는 만큼 형도 내 생각을 하는지 나만큼 괴로운지 아니면 행복한지 늘 궁금했던 부분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결국 자신을 끌어안은 승협의 허리에 팔을 두르자 더 간헐적으로 떨리는 승협의 몸을 끌어안고 말했다.
-나도, 나도 그래.
.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