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일>
20xx년 x월 xx일, 강도 5.7 가량의 지진이 동해안 부근에서 발생했다. 그 어떤 기미도 없었던 갑작스러운 현상이었지만, 누구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인간은 자연을 사용하고 연구하여 발 아래에 두었다고 착각하면서도, 동시에 알아내지 못 한 자연의 변덕에 대해서는 어떤 질책이나 없었다. 자연은 그 무엇도 숨기지 않았고, 그저 인간이 알아내지 못 하고 있는 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고,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았다.
점점 지진은 잦고 넓게 발생했다. 이에 끝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야생동물들의 이상행동, 불규칙으로 쏟아지는 우박과 우천 따위가 이어졌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멎었으며, 베트남 하롱베이에서는 나무들이 노랗게 말라갔다. 뉴욕 한가운데에 싱크홀이 생겼고, 바닷가에서는 앙상한 물고기떼가 표면을 메웠고 물에서는 탁한 냄새가 풍겼다. TV에는 온통 긴급특보 딱지가 붙은 뉴스 데스크만이 가득했고, 기업에서는 스왈로브스키 팔찌나 국내산 간장게장보다는 라면 몇 박스와 휴대용 라디오 같은 것들을 내놓았고 몇 분 가량만에 서버가 터져 품절이 뜨기 일쑤였다. 환경 단체에서는 자연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라며 역사적인 크기의 대규모 시위를 매일같이 벌였으며, 뉴스에서는 최선을 다해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현상들을 분석하고 끼워맞춘 것들에 대해 쉬지않고 브리핑했다. 사람들은 경지를 뛰어넘은 온갖 기술과 지식을 총동원해, 이미 무너져가고 있는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몸부림쳤다. 석유가 끊겼고, 지하수가 말랐다. 무엇이라도 얻어보고자 아득바득 기어나온 자들이 삵같은 눈으로 목적지를 잃은 채 배회했다. 대부분의 공장과 생산시설들이 중단되었고, 사람들은 이 모든 폐헤를 정부에게 책임을 돌리며 국민으로써 보호받을 권리를 주장했다. 푸르던 잔디가 노랗게 시들어간 국회의사당 앞은 언제나 아수라장이었다. 그 수가 모자란 것도 보이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국가 차원에서 제공할 수 있는 최대한의 구호와 복지를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만을 남겼고, 이는 결국 폭력 시위로 이어졌다. 그리고 동해안 지진 91일만에, 전 세계 곳곳에서 근원지를 알 수 없는 괴생물들의 습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 생김새는 듣기에는 그 어떤 동물도 닮지 않았고, 마치 영화 헝거게임에 나오는 머테이션(: Mutation, 돌연변이)와 같은 존재로 추측한다고 했다. 총으로도 쉽게 죽지 않았고,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공격성은 광증과도 비슷하여 인간들은 속수무책으로 뜯겨나갔고 찢어발겨졌다. 머테이션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세상은 끝내 인류에게 종말을 고했다.
승협의 옥탑방은 고요했다. 이미 모든 주민들이 최소한의 보호를 찾아 헤매어 떠났고, 머테이션들도 이들을 따라간 모양인지, 천운으로 옥탑방을 쳐들어오려하는 머테이션은 없었다. 그렇게 철저히 모든 것과 삶으로부터 고립되어 살아간 지 얼마인지 세려는 노력조차 무의미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승협은 조용히 훈이 누워있는 옆자리에 몸을 밀어넣었다. 난방이라고는 없는 저렴한 바닥에서 냉기가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훈아.”
“...”
“자?”
“아니.”
“안 추워?”
“괜찮아.”
말을 건네면 대답할 이가 있다. 그것을 또 승협은 되도않는 위안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상대가, 훈이라는 것 역시 위안 비슷한 것이었다. 적어도, 지금의 승협에게는.
“형.”
“응.”
“나 죽고싶어.”
“...”
“죽고싶어.”
“...”
“어떡하지?”
승협은 낡아빠진 이불을 뒤집어쓰고 제 옆에 누워있던 훈에게서 들려온 나지막한 목소리에, 목소리가 새어나온 이불을 젖혔다. 훈은 눈을 뜬 그 모습 그대로, 베개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소리죽여 울고 있었다.
“훈아.”
“...끅...”
승협은 거의 숨이 넘어갈 듯이 호흡을 억누르며 우는 훈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훈은 저를 감싸안는 승협의 어깨를 붙잡고 울음을 게워냈다. 감히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었다. 가족과는 연락이 끊긴지 네 달이 넘어갔고, 승협의 쓰러져가는 옥탑방은 점점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있는 거라곤 지긋지긋한 베이지색 벽지와 좀 먹어가는 찬장, 그리고 잊을만 하면 들려오는, 죽음에 다다르고 있는 비명소리 뿐이었다. 훈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방 안을 나지막히 채워나갔다. 승협은 그 순간에조차, 그래도 우리가 아직까지 살아있구나. 라며 자신과 제 연인의 안위를 다시금 되새겼다.
“이렇게, 이렇게 언제까지 살아야해, 대체..”
이게 어떻게 사는 거야, 훈은 끝내 마지막 문장을 완성하지 못 한 채로 다시 오열하기 시작했다. 옥탑방에 조난된 후, 훈은 우울증 같은 증세를 보였지만 평범한 국문학도에 불과했던 승협은 그저 망가져가는 훈을 붙잡고 홀로 사투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연인의 울음소리가 마치 비명소리 같아서, 승협은 순식간에 머리를 좀먹어가는 끔찍한 상상으로부터 도망치며 훈을 끌어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까지도 승협은 차마, 훈에게 살아달라고 말 할 수가 없었다.
훈은 하루하루 망가져갔다. 머테이션이 출몰한 새벽(한국 기준으로는 새벽 4시경이었다)으로부터 두 달하고도 몇 주까지는 몇 조각의 노래와 단 것들을 마약 수준으로 갈구하며 버텨냈지만, 평생을 취한 채로 살아갈 수 없었다. 마약이건, 위안이건 얄팍한 도피는 언젠가 끝이 날 운명이며, 그 이 후는 더욱 허망하기 마련이었다. 승협은 끝을 알 수 없는 허망감과 적막, 그리고 절망에 미쳐가는 훈을 붙잡고 그저 버텨냈다. 죽을 수 없어서 살았고, 망가질 수 없어서 버텼다. 오직 훈을 위해서 살아냈다.
이십 분을 꼬박 울던 훈은 지쳐서 얼굴에 눈물이 범벅된 채로 잠에 들었고, 승협은 너무도 마른 훈을 조심히 다시 눕히고 그 옆에 몸을 누였다. 새빨갛게 부은 눈과 눈물로 달라붙은 앞머리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널 위해 무얼 해줄 수 있을까. 나는 너를 위함이라면 그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용서해줄 수 있을까.
훈은 문득 어둠 속에서 잠을 깨었다. 머릿속이 희었다. 훈은 더듬더듬 승협을 찾았고, 승협의 품을 파고들었다. 훈의 세상의 유일한 온기가 따스히 스며들었고, 훈은 다시 눈물이 날 것만 같았지만 그저 눈을 감고 외면하며 잠을 청했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깜빡, 훈의 눈이 뜨였다. 승협이 곤히 자고 있었다. 훈은 승협의 자는 얼굴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얼굴에서 위안을 얻었다. 지금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재앙과 불행들이라곤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평화롭게 눈을 감고 나지막히 숨을 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훈은 승협의 팔을 벤 채로 이불을 끌어올리려 꼼지락거렸고, 그 조근조근한 움직임에 깨어난 승협이 눈을 반 쯤 뜨고는 훈을 끌어안았다.
“훈이, 일어났네..”
“으응. 좀 추워서.”
승협이 이불을 당겨 훈의 귓가까지 덮었고, 훈은 순순히 낡은 천에 파묻혀 다시 눈을 감았다.
“훈아.”
“응.”
“죽고 싶어?”
훈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 했다. 훈조차도 훈의 마음을 몰랐다. 마음이 어지럽고 메스껍고 시끄러웠다. 혼란스럽고 무언가에 뒤덮였고 울렁거렸다. 그냥 죄다 잃어버리고 싶었다. 사랑이고 삶이고.
“...”
“그러면 훈아.”
“응.”
“어떻게 죽고 싶어?”
“...어?”
퍼뜩 떠진 훈의 동그란 눈이 승협을 곧게 향했다. 승협은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승협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훈은 승협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는 눈길을 거두었다. 승협은 늘 훈에게 영원을 말하던 사람이었고, 영원을 믿게 해준 사람이었다. 그런 승협이 영원을 저버린다면, 어찌 해야할까. 승협의 눈은 물어왔다. 우리가 영원을 약속할 수 없다면, 아름다운 종말을 함께하면 되지 않느냐고.
“...머테이션한테 말고. 온전하게.”
“응. 그리고.”
“...웃는 얼굴.”
“좋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추억할만한 게 남았으면 좋겠어.”
“응. 그리고.”
모두가 삶을 갈구할 때, 이 둘은 완전한 죽음을 꿈꾸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됐을까.
그 어떤 불확실함과 변화 속에서도 영원을 이야기하던 우리였는데.
형은 어떻게 죽고 싶은데? 나는, 너랑. 아니, 그런 거 말고. 글쎄. 이렇게 되기 전에는 바다에 뿌려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 왜? 그냥. 이미 재가 된 그건 내가 아닐텐데, 나라고 이름 붙여져서 내 존재의 종지부로 남겨지는 게 싫었어. 맞는 말 같긴 하다. 내 생각이야 그냥.
“여기서 할 수 없는 거, 진짜 없다.”
훈은 나지막히 말했다.
“그러게... 그래도 죽을 수는 있잖아.”
시작부터 지금까지 어느 하나 제 의지였던 것 하나 없는 삶이었으니, 끝마침 정도는 정할 수 있어야 그래도 내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이조차도 얄팍한 변명이었다.
“칼이 제일 단순하긴 한데, 아프기도 아프고 힘들어.”
“그치. 수면제 같은 거 많이 먹으면 죽는다던데, 다른 약은 안 되나.”
“괜히 집어먹다가 속만 버리고 못 죽으면 어떡해. 아, 락스 먹으면 될까? 있어?”
“있긴 할거야. 근데 그것도 아프긴 할텐데...”
“그런가. 그냥 쇠붙이에 베이는 게 가장 덜 아플려나.”
“그럼 어째. 그냥 눈 딱 감고 해야지. 죽기 어디 쉬운가.”
살벌한 대화가 오갔고, 이런 대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있는 스스로가 낯설다고 승협은 생각했다.
“언제 죽을까, 훈아.”
“미룰 거 있나.”
“내일?”
“...나쁘지 않지.”
승협은 쓰게 웃으며, 훈에게 입 맞췄다. 흘러들어오는 체온이 찼다. 이제 모든 행위와 말들에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로 했다. 마지막 입맞춤이었고, 마지막 밤이었다. 둘은 아주 오랫동안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각자의 삶, 기억, 추억, 비극, 사랑, 한 때의 꿈, 감정들. 색이 바랬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웠고 그리웠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향한 그리움은 괴롭기만 했지만, 이 역시도 마지막이므로 둘은 마음껏 아파하며 추억했다.
졸리다. 훈이 말하자 승협은 훈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자자. 라며 이불을 훈의 어깨에 덮고 감싸안았다. 내일이면, 우리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없겠지. 마지막 아침을 향해, 둘은 눈을 감았다. 승협이 눈을 감자 버티고 있던 눈물 한 줄기가 뺨을 타고 미끄러져내렸다. 세상이 무너진 후, 승협이 흘린 최초의 눈물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다.
훈아.
너는 내가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우리의 아침이 밝았다.
날은 유난히 추웠다. 승협은 고요 속에서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몸동작이 마치 말라 비틀어진 밀짚인형처럼 허했다. 창 밖에서 흰 눈송이들이 내리고 있었다. 겨울이었구나, 승협은 그리 생각하며 가장 날이 서있는 것을 골라집었다. 세상이 하얗게 덮이고 있었다. 승협은 어쩌면 하늘이 이 모든 참사를 외면하려고 덮기 위해 희게 뒤덮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잘못 그린 물감 위에 두껍게 칠해지는 흰 물감처럼. 제법 강한 눈발에 눈이 쌓여갔다. 승협은 조심스럽고 엄숙히, ‘자신’이 계획한 대로 죽음을 실행했다. 세상이 희었다. 찢어질 것 같은 고통과 무기력감이 퍼져나갔다. 세상이 고요했다. 승협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굴렀다. 하늘이 구름으로 하얗게 덮였다. 붉은 피가 허무하게 흘러나와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세상은 누구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그저 하얗기만 했다. 끈적하게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흰 눈에 가려진 세상은 누굴 위해 아름다운지 알 수 없었다. 승협이 죽었다. 홀로, 외롭고 아프게 죽어갔다. 입꼬리에는 비틀어낸 웃음이 걸려있었다. 승협을 추억할 이는 없었기에, 그것이면 충분했다. 여전히 눈은 내렸다. 비로소 겨울이었다. 비로소 끝이었다.
177일, 승협이 홀로 버텨낸 시간이었다.
안녕, 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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