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비가 온다고 일기예보가 나온 날이었다. 승협은 간단한 위생용품과 여벌 옷만 챙기고 가방을 닫았다. 거창한 짐은 필요 없었다. 적당히 무릎이 보이는 반바지에 조금은 헐렁해 보이는 티셔츠를 입고 위에는 남방을 걸쳤다. 우산은 챙기지 않았다. 가끔은 비를 맞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 승협은 집을 나섰다.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낡은 MP3를 꺼내어 이어폰을 귀에 꽂은 승협은 노래를 흘리며 푸르슴한 잿빛 구름에 가려지는 햇빛을 보면서 서서히 눈을 감았다. 덜컥하고 멈추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승협은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어났다. 건너 앉은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는 멎었게 웃어 보였다. 가방을 챙기고서는 후다닥 고속버스를 빠져나왔다. 에어컨이 틀어져 있던 버스와는 다르게 밖은 조금은 후덥지근했다. 승협은 짠 바람이 불러오는 곳으로 발을 돌렸다.
여린 회색의 느낌이 맴도는 구름은 곧 비가 내릴 것을 알려주었다. 서늘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해변에 조금은 꺼슬꺼슬한 모래를 밝고 승협은 서 있었다. 바다로 조금 더 걸어가는데 모래 속에 묻혀 있던 조개에 베이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바람과 파도가 거세서 그런지 조개껍질도 날카로웠을까 생각보다 깊게 베인 것 같았다. 모래 색깔이 불그스름해지고 있을 때 불쑥 갈색 머리가 발목을 잡았다. 조금은 앳돼 보이는 소년은 상처에 모래가 들어가면 안 좋다며 승협을 근처 바위에 앉혀두고 생수와 약, 밴드를 가지고 왔다. 소년의 손길은 섬세하고도 부드러웠다. 소년은 이 주변은 조개껍질이 많으니 신발이라도 신고 있으라며 옅은 미소를 보이고는 자리는 떠났다. 소년의 미소가 오늘과의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게 화사하다고 승협은 생각했다.
동성은 습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딱히 특별한 곳도 없는 아주 평범한 바다 동네였다. 동성에게 놀이터란 바다가 전부였기에 때로는 모래성을 쌓기도 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항상 바닷가에 왔다. 그런 동성에게 놀러 오는 사람 한 명 없는 바다에 찾아온 타지인은 눈길을 끌었다. 곱슬한 짙은 갈색 머리는 바람에 부드럽게 흩어지고 조금은 하얀 피부였고 자신보다는 키가 컸다. 바다를 보는 눈은 씁쓸하면서도 비어 있었다. 동성은 그런 승협이 신경 쓰였다. 조개에 발을 베이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가만히 상처를 보면서 서 있는 저 사람은 왜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었을까.
승협은 한참이나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거세진 파도의 소리를 들은 후에야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 젖은 옷들은 화장실에 던져두고 승협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새하얀 이불은 승협이 몸을 구부리는 데로 주름질 정도로 팟팟했고 차가웠다. 창밖은 어두웠고 비가 내렸으며 언제 넘어올지 모르는 파도들이 바람이 되어 창문을 두드렸다. 그 소리는 마치 사람들의 울부짖음으로 변하여 승협의 등살을 타고 올라와 몸을 죄였다.
다음날은 여전히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승협은 다시 바닷가에 갔다. 어제 비가 내려서인지 바다의 기운이 조금은 달랐다. 젖은 모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승협은 앉아있었다. 파도들은 승협을 괴롭히고 질타하는 것처럼 보였다. 동성은 조금은 서둘러서 바다에 갔었다. 바닷가로 가는 계단을 급하게 내려오고 고개를 든 순간 동성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승협을 볼 수 있었다. 그날은 유난히 파도가 매몰차 보였다. 더 서럽게 울었다. 동성은 마음 한쪽이 아프고 답답한 느낌을 받았다. 승협은 그런 바다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자신은 모르는 것 같아 보였다. 쓰린 가슴에 손을 올리며 동성은 먼발치에 앉아 승협을 바라봤다. 저보다 컸지만 얇게 보이는 몸은 위태로워 보였고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동성은 더는 참을 수 없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승협에게 다가갔다. 승협의 어깨를 두드리며 동성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승협은 놀라면서도 본 적 있는 얼굴에 이내 차분해졌다. 컸지만 가늘었던 손은 힘없이 손수건을 받았다. 동성은 조심스럽게 옆에 앉았다. 당신은 누구인지, 어제의 상처는 괜찮은지, 여기에 온 이유는 무엇인지,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한 것인지, 동성은 스스로 주제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말로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승협의 옆에 앉으면서 동성의 머릿속은 하얗게 되었다. 동성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로 엉뚱한 것이었다.
“어렸을 때는 바다는 누군가의 눈물이 모여서 생긴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저도 여기서 자주 울었거든요. 눈물이 모래로 떨어지면 그대로 하나하나 다 바다로 스며들어 가는 것처럼 보였죠. 형을 보니까 그때의 생각이 나요.”
“형은 왜 여기에 왔어요?“
“....그럼 너는 왜 여기에 오니”
생각하지 않았던 되물음에 동성은 당황한 듯하면서도 말을 골랐다.
“모래성을 쌓는다고 생각해봐요. 모래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는 적당히 물을 묻히기도 하고 꾹꾹 누르기도 온전하고 완벽한 모래성을 위해 노력을 하죠. 이렇게 정성을 들인다 해도 막상 만들고 나면 넘실대는 파도에 의해, 다른 누군가에 의해 또는 나로 인해 모래성은 무너지죠. 저는 무너지는 모래성이 무서웠어요. 하지만 무너지는 것은 그저 한순간 이었고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더 이상 두렵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모래성을 쌓으려고 여기에 와요”
승협의 옆의 앉은 낯선 소년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얘기를 꺼냈다. 동성이 하는 말은 무슨 뜻인지 알지는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동성의 이야기는 파도 소리가 잠시 들리지 않게 해주었다. 승협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정리한 후 숨을 고르쉬며 다시 바다를 응시했다.
“나는 바다를 보러 여기 왔어”
“....”
동성은 저것이 표면적인 거짓된 이유인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침묵하는 승협을 들쑤시고 싶지 않았다.
“에이, 여기 이렇게 앉아 있지 말고 딴 데로 가요. 제가 좋은 곳으로 데려가 드릴게요.”
날이 점점 개어 갔다. 구름 사이로 들어오는 빛 사이로 동성은 승협을 끌어당겼다. 동성이 데리고 간 둘레길에는 적당히 바다가 보이고 구멍 난 돌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물먹은 꽃과 풀들이 살랑이고 있었다. 햇빛을 받으며 옅은 미소를 품고 있는 승협을 보자 동성은 자기가 승협을 좋아한다는 것을 자각했다. 뛰기 시작한 심장 때문에 동성은 표정을 감추는 것이 어려웠다. 훤한 배경에 웃으며 걸어가는 동성을 보며 승협은 예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은 파도들이 승협의 발목을 잡았고 승협은 이내 그런 자신의 마음을 모른척했다. 다른 곳도 가자며 승협의 손을 잡은 동성의 귀는 붉어져 있었다.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리는 동성에 승협의 가슴 한쪽이 저렸다.
해가 수평선 아래로 떨어져 붉은 하늘이 점점 어두운 빛깔로 진해질 때 동성은 승협을 야시장으로 데리고 갔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동네 사람들로 찬 야시장은 포근하고 따뜻했다. 자기가 사겠다며 동성이 사온 음식은 적당히 맛있었으며 딱 이 정도의 공간과 시간은 승협이 조금은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주었다.
둘은 해변을 걸으며 고요한 파도 소리가 들리는 바다와 밤하늘이 하나가 된 듯한 저녁 속에 있었다. 말라서 고와진 모래 위에 앉아 둘은 바다를 보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려왔고 검은 하늘에 땅에서 솟아오르는 불꽃더미에 요란한 빛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폭죽들을 보고 있자니 미처 감추지 못해 새어 나오다 넘쳐 버리는 감정들이 생각났다. 그래서일까 승협은 동성에게 자신의 감정을 후두둑 내뱉었다.
“내가 사랑했던 나의 전부였던 사람들이 있었어. 하지만 그들은 내가 있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웠고 불행했어. 결국 나 때문에 죽게 되었지. 차라리 내가 아프기를 내가 죽기를 바랐어. 그들의 원망의 목소리가 자꾸 나를 찾아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여기에 왔어... 그런데 여기에 와서 바보같이 다시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었지.”
“동성아, 나는 널 좋아할 수 없어... 나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어”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모래 위로 떨어졌다. 복받치는 감정을 쏟아내는 승협을 동성은 감싸 안았다. 승협보다 작은 체구였지만 승협의 마음을 감싸기에는 충분했다.
“형 때문이 아니에요. 그들은 형을 사랑했으니까 마지막까지 형을 사랑했기 때문에 형 옆에 있던 거예요. 그리고 중요한 건 소중했던 그 순간들이에요. 그 속에 그들은 형을 사랑하고 있었잖아요. 그것들을 없는 것으로 만들 수는 없잖아요.
“형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무너진 그 순간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 노력했던 순간이니까.”
뜨거운 모래사막을 한없이 걷다가 먼지만 휘날리는 바닥에 떨어져 아 이제 죽겠구나 생각이 들 때 자신을 발견하고 살려준 동성은 무엇보다도 사랑스럽게 소중하게 승협은 느꼈다. 동성은 승협을 바라봤다. 순간 번지는 불꽃에 비치는 승협의 눈가는 옅은 홍조가 번져있었다. 얕은 눈물이 담겨있는 눈은 반짝였고 동성은 손을 뻗어 승협의 얼굴을 감쌌다. 승협의 움츠러드는 발끝 사이로 모래들이 들어앉아 발을 간질였다. 다시 불꽃이 번졌을 때 입술은 이미 맞닿아 있었다.
둘은 옷에 묻은 모래를 털고 일어났다. 손을 내민 동성에 승협은 힘을 주어 손을 잡았다. 두 손이 맞닿은 곳은 뜨거웠다. 조금은 더 솔직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밤하늘의 불꽃은 그들이 걸어가는 길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도착한 곳은 승협의 숙소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랴 감정을 쏟아붓느라 둘 다 지쳐있었다. 동성이 씻는 동안 승협은 이부자리를 폈고 승협이 씻는 동안 동성은 승협의 가방을 만졌다. 승협이 나오자 동성은 승협을 당겨 이불 속으로 넘어드렸다. 적당히 포근한 새하얀 이불에서는 샴푸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둘은 서로를 보면서 웃었고 행복해 보였다.
자는 동성의 볼을 콕콕 찔러도 보고 하나하나 다 곱씹어 보면서 승협은 말했다.
“사실은 조금은 불안해. 내가 다시 사랑해도 괜찮은지. 하지만 이제 괜찮아. 나도 모래성을 쌓을 준비가 됐어. 사랑해, 동성아”
